법사위의 ‘자구 심사 권한’을 없애라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3-11-20 07:49
조회
243
법사위의 ‘자구 심사 권한’을 없애라

2023.11.20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업무에 ‘법률안의 체계와 자구 심사에 관한 사항’이 있습니다. 국회법 86조 1항에는 다른 상임위에서 심사를 마친 법률안은 법사위에 넘겨 체계와 자구 심사를 거쳐야 하고, 5항에는 법사위는 위 법률안을 ‘법률 체계와 자구 심사 범위를 벗어나 심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사위는 법률체계 검토와 자구 심사를 구실로 사실상 다른 상임위를 통제하는 기관처럼 굴고 있습니다. 더욱이 문제는 법률체계 검토와 자구 심사를 빌미로 특정 직역(말하자면 변호사)의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해왔고 지금도 계속됩니다. 항간에는 변호사 직역을 건드리는 법안은 법사위를 통과할 수 없다는 말이 펴져 있습니다. 아닙니까?

 

법안이 제출되면 소관 상임위는 전문위원 검토와 보고서, 공청회, 관계 기관장 답변을 듣는 절차를 거치면서 법안을 심사하고, 타당한 법안이라고 판단하면 의결합니다. 그리고 법사위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법사위에 ‘법률 체계와 자구 심사’를 빌미로 법안이 묶여버리는 사례가 자주 나타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변호사 직역과 관련하여 벌어진 일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임위에서 법안 심사는 무의미해집니다. 각 상임위는 독립 지위인데 자구를 심사한다는 이유로 법사위에 붙들어 매면 법안이 본회의로 가지 못합니다. 이는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 활동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곤란합니다.

 

<‘법률 체계와 자구 심사’는 별도 조직에 맡겨라>

 

법률안에서 ‘법률 체계와 자구 심사’는 곁가지 절차입니다.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가 법률안의 본질이고, 법률 체계와 자구는 점검해야 할 부대 사항입니다. 그런데 이를 법사위가 심사하도록 하고, 모든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도록 한 현행법은 비정상입니다. 현실은 자구 심사 권한으로 특정 직역의 이익을 지키는 수단으로 쓰입니다. ‘법률 체계와 자구 심사’는 각 상임위에 전문인력을 두거나, 국회 안에 전담 기구를 두어 해결해야 합니다. 법사위 소관 법안도 별도 기구에서 자구 심사를 받고 본회의로 가야지요. 법사위가 자구 심사를 더 잘한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자구 심사 기능을 법사위에 두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법사위가 '자구 심사'하는 폐해가 심각하다>

법사위 제2소위는 타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을 심사하는 곳입니다. 제2소위는 ‘법안의 무덤’이라는 악명으로 불립니다. 2023.10.12. 현재 법안 34건이 묶여 있습니다(표 참조). 그 법안은 오랜 시간 다른 상임위에서 심사를 거쳐 법사위로 넘어간 법안입니다. 모두가 처리시한을 넘겼습니다. 34개 중 거의 절반이 ‘위원장 대안’ 법률안인 것을 보면 각 상임위에 충분히 깊이 심사하고 넘어온 법안인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회법 86조 제3항에는 자구 심사를 위해 법사위에 넘어온 법안은 60일 안에 심사를 마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위 표에서

법사위 제2소위 계류 법안 현황

(2023.10.12. 현재 총 34건)

출처: 법사위 누리집

 

보듯 34개 법안은 모두 60일을 넘겨 법사위에 묶여 있습니다. 법사위가 국회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제2소위는 회의가 잘 열리지 않습니다. 표에 나온 변리사법 개정안과 관세사법 개정안은 변협이 반대하는 법안입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더라도 변호사 업역을 건드리는 법안이면 법사위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법사위가 특정 직역을 위해 움직인다는 세간의 평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부터 법사위는 변호사 출신 의원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공정하게 국익을 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국회에서 의원 출신을 따지는 게 치졸합니다만, 법사위에 변호사 출신 의원을 전체의 1/3 아래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현실은 변호사 출신이 과반을 차지합니다.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은 현재 또는 나중에 변호사로 일할 사람입니다. 변호사 업역에 관련된 법안 심사에는 이해가 충돌하므로 그런 법안 심사에는 참여하지 않아야 합니다(회피 규정). 법을 떠나 상식입니다. 국회법 32조의 5에도 표결이나 발언에 회피 신청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징계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스스로 심사와 발언에서 빠지는 법사위원도 없고, 버젓이 참여하는 의원을 징계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법사위에 ‘법령 체계와 자구’를 심사할 권한을 주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뻔합니다. 국회법을 고쳐 ‘법령 체계와 자구’할 권한 법사위에서 하루빨리 없애야 합니다. 국회 회기가 끝날 때마다 법사위에 묶여 무더기로 자동 폐기되는 사태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합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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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