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경영의 CM마인드… 사업성패의 결정적 요소

작성자
admin
작성일
2003-09-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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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재호 KOPEC 상무/본지 논설위원

- 철도건설 사업관리(CM) 수행사례-上


철도란 단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58년 겨울 부산에서 삼척으로 간적이 있는데, 통리역에 도착한 후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을 타고 내려가던 중, 발이 미끄러져 굴러 결국 갈아탈 철암선열차를 놓쳐 심포리에서 삼척(도경)까지 밤새도록 헤메면서 그 먼 철길을 따라 장장 20여 시간 걸어서 집을 찾아 간적이 있었다.
1963년이후 스위치백으로 황지본선(黃池本線:통리~심포리 사이의 8.5 km)이 연결되어 영동선이 개통되었고, 지금은 전철화되고 직선화공사가 진행중이지만 그 시절에는 정말 힘든 여로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철도공사는 76년도에 부임한 사우디해군기지공사의 궤도시설 공사이었다.
이 궤도는 수리할 군함을 수중에서 부두의 싱크로라이즈 리프팅시스템으로 인양하여 수리도크로 이동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일반토목공사와는 달리 궤도와 콘크리트의 표면의 허용오차가 파미리로 매우 정밀한 시공이 요구되었고 특히 그 당시 기술과 장비로는 그러한 허용오차 범위내로 맞추기란 시공과정상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이 시절 미국 공병단의 요청에 따라 모든 공사가 PERT·CPM 기법에 의해 관리되었고 EVMS에 의해 기성처리가 이루어 졌는데, 아직도 국내에서는 이의 정착이 어려운 것을 보면 사업관리 중 공정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 수 있고 적산제도의 개선과 공정관리의 실용화가 없이는 EVMS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 후 79년도에 현대는 이라크의 북부지방을 동서로 관통시키는 즉 유프라데스강과 티크리트강간을 잇는 K-B-H 철도공사를 선진 외국사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공기 8년, 공사비 9억7천만불(철도차량 공급제외)에 수주하게 됐다.
이 공사의 개요를 살펴보면 철도 연장이 272km, 최고설계속도 250km/hr로서, 당시만 해도 세계최대 규모의 고속철도공사중 하나였으며 경부고속철도공사와 비슷한 대형 종합 프로젝트였다.
발주처는 이라크 신철도공단(NRIA)이였으며, 엔지니어링회사는 기본설계를 한 독일 DEC사가 맡고, 상세설계 및 건설은 현대콘소시엄(현대 80%, 남광 및 정우 10%)이 건설사업관리를 담당하였다. 이것이 내가 국내에서 사업관리에 푹 빠진 계기가 됐다.
이라크에 도착한 후 선진철도의 기술을 익히고자 인접 공사현장인 멘데스주니어가 시공하는 동부철도현장에 주야간없이 낮은 포복으로 접근하여 카메라로 컨닝을 하며 기술을 익히다가 현장에서 도독으로 몰려 감금당했던 일, 밤새 외국 철도교과서와 각종 철도공사자료를 입수하여 연구하던 일, 궤도공구 직원과 근로자들이 형제의를 결의하여 그 어려웠던 난관을 헤쳐 나갔던 일 등 이 모든 것이 어제 일만 같다.
이 사업의 특징은 설계단계부터 FAST TRACK 기법을 적용, 설계에서부터 시공-시운전-유지관리 공사 전과정에 걸쳐 PERT·CPM 기법과 TIME DISTANCE기법을 최대한 연계하였고 자원투입의 최적화(JIT), 공법 및 기술개발을 통한 고품질확보, 공기단축 등으로 공사원가를 절감했다.
또한 이라크 정부 역시 고속철도망 구축에 있어서 세계 선진국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의거하여 정책 사업으로 추진했고 사업참여사들도 이에 부응해 과감히 특수기법 및 공법을 개발, 현장에 적용함으로서 기술의 선진화를 이룩했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건설업체 역시 세계에서 몇 안되는 고속철도관련 기술보유회사가 되었고 많은 기술적인 노하우가 축적할 수 있었다.
나는 현장소장으로 궤도공사를 포함한 토목공사를 87년에 성공리에 마무리한 후 귀국요청을 했으나, 전기·신호·통신·기계까지 완료후 복귀하라는 본사지시에 어쩔 수없이 2년간 더 통합소장으로 예비준공검사(FHO)를 89년에 완료했다.
그 후 중동소장회의시 이명박회장에게 한 현장에 6년이상 근무한다는 것은 가정상 문제로 불가함을 밝혔더니 본사에서 경영층회의 후 알려 준다고 해 기다리던 중 갑자기 본사에서 바그다드공항에서 귀빈을 접대하라고 가보았더니 그곳에 집사람이 도착해 있지 않은가?
그 당시 발주처의 총책임자는 차관급으로 여성 토목기술자였는데 본인이 직접 시간을 내어 아라크내 유적지를 구경을 시켜주어 집사람은 이라크에 8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적을 다 보았으니 큰 영광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은 당시 현대는 이라크에서 2개의 대형토목공사를 수주하였는데 철도공사는 낙찰율이 안 좋아 서로 안 가려 하여 분위기가 썰렁했고, 반면에 고속도로공사는 낙찰율이 너무 좋아 지원자가 너무 많아 축제분위기속에서 본사에서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후 고속도로공사는 도급액에 300% 가깝게 완공되어 현대의 골칫거리 현장으로 추락했으나 철도공사는 고속도로현장에 장비자재를 엄청나게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이익을 남겨 효자가 됐던 것이다.
여기서 난 공사판의 철학을 알았다. 즉 공사의 낙찰율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소장이 되고 그 참모진이 누구냐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차이임을 알았다. 이는 국가나 기업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