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끈 짧아도 돈 쓸어 담았다는 주인장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3-09-26 07:01
조회
171
가방끈 짧아도 돈 쓸어 담았다는 주인장 2023.09.26
서울 떠나 시골 생활 하는 동안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돈을 쓸어 담았노라는 사연은 들을 때마다 귀를 쫑긋하게 되고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게 되더라구요.
지금도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인 세종시 연기면 연기리 네거리에는, 주유소 옆 마당을 가로질러 대여섯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 허름한 식당이 있습니다. 가끔 점심을 해결하러 찾다 보니 여주인장과 말을 트는 사이가 되었습지요. 일흔 고개도 절반을 훌쩍 넘겼다는 주인장은, 훤칠한 키에 이목구비 또한 큼직큼직한 것이 첫 만남부터 기분 좋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자신은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지라, 평생을 공부하곤 담쌓고 살았다네요. 심지어 초등학교 때는 창피하게도 3학년만 3년을 다녔답니다. 가까스로 한글 깨치고 숫자 세는 것 배우고 나선,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한 끝에 졸업장 하나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데 가방끈은 짧았지만 돈 버는 일만큼은 늘 재미도 있고 자신도 있었답니다. 정말 “길 위에 돈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는 주인장, 어찌어찌하여 꽃다운 나이 스무 살부터 전국 방방곡곡 건설 현장 따라다니며 함바집을 했다고 합니다.

함바집이란 말은 종종 듣기는 했지만 정확한 뜻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함바(はんば, 飯場)는 건설 현장 안에 지어놓은 간이식당을 부르는 말로 일본어에서 유래하였다. 함바집, 현장 식당, 건설현장 식당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토목 공사나 광산 등지에서 동원된 노동자들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임시로 지은 간이 건물을 ‘함바(はんば)’라고 불렀다.’는 친절한 설명이 나와 있네요.

여주인장 말로는 먹는 장사가 남는 장사인 데다, 전국에 한창 공사판이 벌어지다 보니 젊은 나이에 “돈을 좀 모았다.”고 했습니다. 충청도식으로 ‘돈을 좀 모았다’는 표현은 실은 ‘제법 큰돈을 벌었다’는 의미일 거라고, 동네분들이 귀띔을 해주네요. 여주인장, 전국에 돈 되는 곳마다 땅 사고, 목 좋은 곳에 상가도 마련하고, 대전 어딘가에 건물주란 소문도 파다했답니다.

세종시 개발 초창기부터 함바집을 하다가, 연기리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원룸촌(村)이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 자리에 한식 뷔페식당을 차렸다고 합니다. 함바집 스타일의 성공 비결은 무엇보다 가성비가 좋아야 하기에, 신선한 식재료를 값싸게 구입하는 루트를 뚫어야 하고, 고객이 질리지 않도록 메뉴를 다양화해야 한답니다. 이곳에선 밥과 국에 돼지고기+신김치 두루치기를 기본으로 하고 하루 10~12가지 반찬을 제공합니다. 주인장 머릿속엔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무침 부침 찜 튀김 종류별, 200가지 넘는 반찬이 저장되어 있다네요. 인건비 절감도 중요하지만, 이 바닥에선 현금 장사와 외상 깔기를 적절히 섞어야 한답니다. 개인 손님에겐 무조건 현금 장사를 원칙으로 하고, 단체 손님이 들어오면 월식(한 달 단위로 밥값을 정산하는 방식을 부르는 말 같습니다)으로 가되, 책임자 관상을 보고 외상을 깔아도 되는지 여부를 직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답니다. ‘현금은 육천 원, 카드 결제는 칠천 원’처럼 현금 우대도 필수랍니다.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중국 아줌마 두 명 데리고 본인이 직접 장사 준비를 하곤 했는데, 관절염이 도져서 올 3월부터는 아들 며느리 내외에게 물려주었답니다. 아들 며느리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시)어머니 돈 쓸어 담는 현장을 보곤 두 말 없이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세종시로 내려왔다네요.

블루베리와 소나무를 키우다 보니, 오랜 세월 몸으로 터득한 기술과 자신만의 필살기로 남부럽지 않게 돈을 모은 이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올봄만 해도 지하수가 말라버려 관정을 다시 파야 했는데, 관정 기술자 하루 일당(?)은 100만 원이 정가입니다. 전기 기술자도 한 번 출장에 기본 10만 원부터 시작해서, 작업 시간 및 난이도에 따라 몸값이 치솟습니다. 나무 자르는 기술자, 묘목 심는 기술자, 나무 캐는 기술자, 나무 운반하는 기술자 모두 모두 몸값이 세구요, 비닐하우스 기술자, 방조망 설치 기술자, 저온 냉장고 설비 기술자들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도 없이 현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음을 실감했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추석 보름달이 커다란 쟁반만 하게 보이면 부~자가 된단다.” 하셨는데, 긴 가방끈에 마음만은 부자라고 애써 위안 삼는 손녀딸 보시며 하늘에서 뭐라실지 문득 궁금해옵니다.^^  안
함인희
미 에모리대대학원 사회학 박사로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사랑을 읽는다> <여자들에게 고함>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등이 있습니다